장애인 자살률, 전체 인구의 두 배 넘어…“장애 특성 반영한 예방체계 필요”

정부가 자살률 감소를 위한 범정부 대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자살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예방 정책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장애인은 건강 문제와 사회적 고립, 경제적 어려움, 차별 경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큰 집단이다. 그럼에도 현재 정부의 자살 예방 정책에서 장애인을 별도의 주요 정책 대상으로 설정한 대책은 충분히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살 문제가 개인의 질환이나 심리 상태만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사회·경제적 요인까지 함께 작용하는 복합적인 문제라고 밝혔다. 정부 역시 자살을 심각한 사회적 재난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예방 전략 이행에 적극 나서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정부는 최근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대책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지난 5월 제20회 국무회의에서는 ‘9대 분야별 자살예방 대책’ 추진 방향이 논의됐고, 7월에는 자살 시도 발생 시 보건복지부와 경찰청, 소방청이 공동 대응하는 ‘국가자살대응실’ 운영 계획도 제시됐다. 그러나 장애인의 자살 위험은 전체 인구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이 발표한 ‘2025 장애통계연보’에 따르면, 2023년 장애인의 자살에 의한 조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56.7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53.1명보다 3.6명 증가한 수치다.
같은 해 전체 인구의 자살에 의한 조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27.3명이었다. 장애인의 자살 조사망률이 전체 인구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셈이다. 장애인 자살 위험이 통계상으로도 뚜렷하게 확인되고 있지만, 이를 반영한 정책 대응은 아직 미흡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장애인 자살 예방의 필요성은 정치권에서도 여러 차례 제기돼 왔다. 지난해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국가자살예방전략과 관련해 장애인의 자살률이 비장애인보다 약 두 배 높고, 장애인 가족의 자살 문제도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장애인 대상 자살 예방 내용이 빠진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자살 예방 대책에서도 장애인을 독립적인 정책 대상으로 다루는 내용은 제한적이다. 정부의 ‘9대 분야별 자살예방 대책’에는 학생·청소년, 고립 위기 가족, 경제적 실패자, 특수직군·집단보호 대상자, 범죄피해자 등을 위한 대책이 포함됐지만, 장애인을 별도로 설정한 대책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장애인의 자살 예방을 위해서는 일반적인 상담과 지원 체계를 그대로 적용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장애인의 생활환경, 신체적 제약, 사회적 차별 경험, 가족 돌봄 부담 등을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전문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한진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에서도 자살률이 높은 수준인 만큼 정부가 자살예방센터 운영 등 다양한 대응을 하고 있지만, 장애인에게 특화된 프로그램과 제도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이 단순히 신체적 불편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봤다. 장애로 인한 이동 제한, 사회적 차별, 관계 단절, 경제적 취약성 등이 우울과 절망감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러한 문제를 개인의 심리 문제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장애인의 자살 문제는 사회적으로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 측면도 있다. 장애 자녀를 돌보던 부모가 자녀를 해친 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건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는 경우가 있지만, 장애인 당사자의 자살 위험과 예방 대책은 상대적으로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장애인의 자살 예방을 위해 상담 인력의 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장애 유형별 특성, 의사소통 방식, 일상생활의 제약, 복지서비스 이용 경험 등을 이해하지 못하면 위기 상황에 놓인 장애인을 충분히 지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현재 현장 전문가들이 장애인의 특성과 이들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충분한 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장애인의 자살 위험을 접하더라도 일반적인 상담 방식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장애인의 자살과 우울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는 장애인 당사자의 경험과 관점이 적극 반영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장애인이 실제로 겪는 사회적 장벽과 심리적 부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참여를 바탕으로 상담 매뉴얼과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장애인을 단순히 ‘우울한 사람’으로 규정하는 접근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애인의 심리적 어려움 뒤에는 차별, 빈곤, 고립, 돌봄 부담, 접근성 부족 등 사회 구조적 요인이 자리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장애인 자살 예방 대책은 상담과 치료 지원뿐 아니라 지역사회 관계망 강화, 소득과 돌봄 지원, 의료 접근성 개선, 장애인 가족 지원 등 복합적인 대책과 함께 추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자살 예방을 사회적 재난 대응의 관점에서 추진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의 정책에는 장애인의 특성과 위험 요인을 반영한 별도 전략이 포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장애인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통계로 확인된 높은 위험도를 정책 우선순위에 반영하고,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맞춤형 예방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